2008년 06월 11일
내 손 안에 쥐어져 있는 것....
어제 지금은 퇴사를 하셨지만, 아직도 우리 회사 내에서 전설로 통하시는 분을 만났다. 그 분은 이미 나의 입사 당시 퇴사를 한 상태여서 애기로만 들어오던 분이었다.
생각보다 젊은 분이어서 놀라웠고,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만나서 당황했었다. 어제의 술자리는 나의 사직때문에 생긴 회식이어서 어쩐지 조금 민망하기도 했었다.
그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 손에 두 개의 잔을 들기는 힘들다. 무언가를 버리려고 한다면 확실히 버리고 하나를 잘 쥐어라 라고...이미 내가 퇴사를 결심한 순간 나 역시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그것도 한 분야, 아니 한 회사에서 전설이라고까지 칭송받는, 그 나름 능력을 인정받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땐 느낌이 달랐다.
뭔가 더 명확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입사 이래 전직과 이직에 대한 고민은 수차례했었고, 이 어렵고, 또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전직이었다. 어찌보면 무모한 결심이고, 겁없는 도전이지만, 내 생각엔 해보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더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전혀 해보지 않은 일에 떨리는 발걸음을 한 걸음 옮긴 것이었다.
물론 요즘 투잡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 개발과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나의 팀장님 이하 많은 분들이 퇴사를 다시 재고하라고 말씀 하셨다. 그 분들의 말씀은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라고 그 시도를 해보지 않았겠는가? 나 역시 회사를 다니면서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여러 모임에 참여를 하기도 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려고 시도를 해보았다. 하면서 느낀 것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하기란 나란 사람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회사 일도, 그리고 하고 싶은 일도 둘 다 어중간하게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손에는 두 개의 잔이 들려있다. 하나는 몇년 동안은 목마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잔이고, 또 하나는 밑바닥에 아주 조금 무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찰랑걸리고 있는 잔이다. 두 개의 잔을 모두 들기에는 내 손이 작다. 그래, 나는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이 왔었다. 몇년 동안은 목마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내가 조금만 더 일한다면 평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 직장과 이제 발을 때어버리면 거기가 낭떨어지인지 아님 오르기 힘든 경사각 80도의 오르막 길인지 평탄한 지름길인지 알 수 없는 길 중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그래 조금 부끄러운 변명이지만 변명을 해보자.
나는 살아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항상 나의 기준은 부모님을 실망 시켜드리지 않는 것, 부모님을 걱정 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을 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지는 게임은 해 본 적이 없다. 왜냐면 질 것 같은 게임은 해 보지 않았고, 늘 항상 이긴다는 확신이 있는 게임만을 했기때문이다. 그래 내 저 기준에 지금까지 잘 부합하며 살아왔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키우며 힘들었던 적도, 딱히 나로 인해 고민했던 적도 별로 없으셨다고 한다. 다른 자식들보다 키우기 훨씬 쉬었다고도 한다. 물론 그거야 그저 하는 말일테다. 어찌 자식을 키우며 힘들었던 적도, 고민했던 적도 없겠는가. 매일같이 딸자식 걱정에 한숨 눈 붙이기도 어려우실테다. 그래도 저렇게 허드레를 떠실 수 있을 만큼은 내가 해왔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왔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어왔다. 그래 짧은 사회경험이지만, 막상 일을 하다보니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일이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는 일을 하니 능률이 나지 않고 그저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고, 당장 닥친 일에만 허덕이고 있는 내 모습이 어느 날 내 눈에 비췬 것이다. 그렇다고 책임감없이 일하지는 않았다.
배부른 변명이고, 배부른 투정일테지만.
내게 일이란 생계의 수단이란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 나의 자아, 나의 행복을 위한,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출구이기를 바랬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다. 성공하고 싶으면 하고 싶을 일을 하라고. 그저 나를 보호하고, 변명하기 위한 말일지라도.
아직 배고플만큼 어려움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이런 철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한심한 인간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내 손 안에 간신히 떨어지지 않고 들려 있는 두 개의 잔을 내려다 보았다. 손가락이 찢어질 것 같아 이젠 두 개가 다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 무엇을 들어야할까?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독인지 생명수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 번엔 선택을 해보자. 죽을 듯이 매달리다보면 언젠가 그 정상에 서서 내려다보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아직 젊다. 젊다는 것은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길을 낭떨어지로도 평탄한 길로도 만들 수 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잔을 독으로도 생명수도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이제 내가 선택한 그 것을 어떻게 하느냐하는 나의 행동이 결정짓는 것이다.
나중에 그래 아주 나중에 지금 내가 한 이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생각보다 젊은 분이어서 놀라웠고,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만나서 당황했었다. 어제의 술자리는 나의 사직때문에 생긴 회식이어서 어쩐지 조금 민망하기도 했었다.
그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 손에 두 개의 잔을 들기는 힘들다. 무언가를 버리려고 한다면 확실히 버리고 하나를 잘 쥐어라 라고...이미 내가 퇴사를 결심한 순간 나 역시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그것도 한 분야, 아니 한 회사에서 전설이라고까지 칭송받는, 그 나름 능력을 인정받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땐 느낌이 달랐다.
뭔가 더 명확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입사 이래 전직과 이직에 대한 고민은 수차례했었고, 이 어렵고, 또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전직이었다. 어찌보면 무모한 결심이고, 겁없는 도전이지만, 내 생각엔 해보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더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전혀 해보지 않은 일에 떨리는 발걸음을 한 걸음 옮긴 것이었다.
물론 요즘 투잡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 개발과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나의 팀장님 이하 많은 분들이 퇴사를 다시 재고하라고 말씀 하셨다. 그 분들의 말씀은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라고 그 시도를 해보지 않았겠는가? 나 역시 회사를 다니면서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여러 모임에 참여를 하기도 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려고 시도를 해보았다. 하면서 느낀 것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하기란 나란 사람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회사 일도, 그리고 하고 싶은 일도 둘 다 어중간하게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손에는 두 개의 잔이 들려있다. 하나는 몇년 동안은 목마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잔이고, 또 하나는 밑바닥에 아주 조금 무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찰랑걸리고 있는 잔이다. 두 개의 잔을 모두 들기에는 내 손이 작다. 그래, 나는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이 왔었다. 몇년 동안은 목마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내가 조금만 더 일한다면 평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 직장과 이제 발을 때어버리면 거기가 낭떨어지인지 아님 오르기 힘든 경사각 80도의 오르막 길인지 평탄한 지름길인지 알 수 없는 길 중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그래 조금 부끄러운 변명이지만 변명을 해보자.
나는 살아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항상 나의 기준은 부모님을 실망 시켜드리지 않는 것, 부모님을 걱정 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을 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지는 게임은 해 본 적이 없다. 왜냐면 질 것 같은 게임은 해 보지 않았고, 늘 항상 이긴다는 확신이 있는 게임만을 했기때문이다. 그래 내 저 기준에 지금까지 잘 부합하며 살아왔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키우며 힘들었던 적도, 딱히 나로 인해 고민했던 적도 별로 없으셨다고 한다. 다른 자식들보다 키우기 훨씬 쉬었다고도 한다. 물론 그거야 그저 하는 말일테다. 어찌 자식을 키우며 힘들었던 적도, 고민했던 적도 없겠는가. 매일같이 딸자식 걱정에 한숨 눈 붙이기도 어려우실테다. 그래도 저렇게 허드레를 떠실 수 있을 만큼은 내가 해왔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왔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어왔다. 그래 짧은 사회경험이지만, 막상 일을 하다보니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일이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는 일을 하니 능률이 나지 않고 그저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고, 당장 닥친 일에만 허덕이고 있는 내 모습이 어느 날 내 눈에 비췬 것이다. 그렇다고 책임감없이 일하지는 않았다.
배부른 변명이고, 배부른 투정일테지만.
내게 일이란 생계의 수단이란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 나의 자아, 나의 행복을 위한,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출구이기를 바랬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다. 성공하고 싶으면 하고 싶을 일을 하라고. 그저 나를 보호하고, 변명하기 위한 말일지라도.
아직 배고플만큼 어려움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이런 철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한심한 인간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내 손 안에 간신히 떨어지지 않고 들려 있는 두 개의 잔을 내려다 보았다. 손가락이 찢어질 것 같아 이젠 두 개가 다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 무엇을 들어야할까?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독인지 생명수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 번엔 선택을 해보자. 죽을 듯이 매달리다보면 언젠가 그 정상에 서서 내려다보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아직 젊다. 젊다는 것은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길을 낭떨어지로도 평탄한 길로도 만들 수 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잔을 독으로도 생명수도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이제 내가 선택한 그 것을 어떻게 하느냐하는 나의 행동이 결정짓는 것이다.
나중에 그래 아주 나중에 지금 내가 한 이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by | 2008/06/11 13:20 | ESSAY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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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어렵지만 그걸 하는건 정말 더 어려운것 같다.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흔들리기도 하니까 ..
불굴의 철인???ㅋㅋㅋ